시니어의 조언은 왜 주니어의 귀에 닿지 않는가

조언보다 질문이 나은 이유, 듣기가 어려운 이유

Jan 17, 2026

김현기

#ETC

들어가며

시니어가 되면 주니어들과 이야기할 일이 많아진다. 1:1 미팅, 코드 리뷰, 점심 식사 중 불쑥 나오는 고민 상담까지. 상대가 힘들다고 하면 뭔가 해줘야 할 것 같고, 내 경험에 비춰서 해결책을 제시하게 된다.

“나도 그런 적 있는데, 이렇게 해봐.”

아니면 이렇게 물을 수도 있다.

“어떤 부분이 제일 힘들어?”

둘 다 좋은 의도다. 하지만 결과는 다르다.

“좋은 관계는 듣기에서 시작된다”의 12장 “유대를 이끄는 듣기”는 이 차이에 대한 힌트를 준다.

잘 듣는다는 게 뭔지, 왜 우리는 듣기보다 말하려 하는지, 어떻게 해야 상대가 스스로 답을 찾게 도울 수 있는지.

대화 나르시시즘

내 경험으로 대화를 가져가는 순간

동료: 이 버그 원인 찾는 데 하루 종일 걸렸어.
: 나는 저번에 3일 걸린 적도 있어.

팀원: 요즘 일이 너무 많아서 퇴근을 못 해요.
: 나도 입사 초반에 그랬어. 적응하면 괜찮아질 거야.

평소 경험해봤을 법한 익숙한 상황이다. 상대가 힘든 이야기를 꺼냈는데, 나도 모르게 내 경험으로 대화를 가져간다.

사회학자 찰스 더버는 이를 전환반응(shift response) 이라 부르고, 이런 경향을 대화 나르시시즘(conversational narcissim) 이라 정의했다.

교감의 가능성을 짓밟아버리는 행동이라는 것이다.

지지반응은 다르다

같은 상황, 다른 반응을 보자.

동료: 이 버그 원인 찾는 데 하루 종일 걸렸어.
: 하루 종일? 어디서 막혔어?

팀원: 요즘 일이 너무 많아서 퇴근을 못 해요.
: 어떤 일들이 많아요?

지지반응(support response) 은 상대가 더 이야기할 수 있도록 공간을 만든다.

전환반응이 대화를 나에게로 가져온다면, 지지반응은 상대에게 더 많은 공간을 준다.

핵심은 개방형 질문이다. 자기 자신의 의견을 강요하기 위한 폐쇄형 질문이 아닌 더 많은 정보를 이끌어내기 위한 개방형 질문을 통해 상대방을 이해해야 한다.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

지지반응으로 개방형 질문을 했는데 예상치 못한 대답이 돌아왔다.

팀원: 요즘 일이 너무 많아서 퇴근을 못 해요.
: 어떤 일들이 많아요?
팀원: 이것도 해야 하고 저것도 해야 하고… 도무지 뭘 하려는 건지 모르겠어요. 솔직히 퇴사 고민 중이에요.

갑작스럽게 퇴사? “어… 이게 아닌데… 뭐라고 답해야 하지?”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사람들이 개방형 질문을 꺼리는 이유는 바로 이런 당혹스러운 순간이 싫어서다. 질문 자체를 두려워하게 된다.

왜 우리는 질문하는 것을 꺼릴까?

무엇이 두려운가?

1. 대화 방향을 예측할 수 없다

개방적인 태도로 귀를 기울이는 건 어느 정도 모험심과 용기를 필요로 하는데, 그건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도무지 예측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어떤 일들이 많아요?”라는 개방형 질문을 던지는 순간 대화의 통제권은 상대에게 넘어간다.

2. 상대의 감정을 마주해야 한다

연구에 따르면, 직장인들이 부정적 대화로부터 얻는 불쾌감은 긍정적 대화로부터 얻는 만족감보다 다섯 배나 더 높다고 한다.

질문을 통해 상대의 부정적인 감정(불만, 좌절 등)에 접근하는 것은 상당한 에너지가 드는 일이다. 상처받는 위험을 감수하기보다 차라리 거리를 두는 쪽을 선택하려는 본능적 성향 때문일 수 있다.

3. 모른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

“내가 모른다는 사실이 밝혀지거나 대화가 내가 모르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상황 자체를 불편해하고 두려워하기 때문에, 이를 방어하기 위해 ‘박식한 척’하며 가짜 질문 뒤로 숨게 되는 것입니다.”

팀원이 “이 버그가 도저히 안 잡혀요”라고 했을 때를 생각해보자.

“그거 캐시 문제 아니야?”라고 물으면, 나는 이미 원인을 파악한 사람이 된다. 설령 틀려도, 적어도 뭔가 아는 사람처럼 보인다.

“어떤 상황에서 발생해?”라고 물으면, 나도 원인을 모른다는 게 드러난다. 시니어로서 뭔가 불편하다.

그래서 후자 대신 전자를 선택하게 된다.

이를 “위장된 전환반응”이라 부른다. 질문의 형태를 빌렸지만, 사실은 내 판단을 확인받으려는 것이다.

우리는 질문을 한다고 착각하지만, 사실은 내 정답을 주입하고 있다.

문제는 당사자만이 해결할 수 있다

앞서 팀원이 “퇴사 고민 중이에요”라고 했을 때처럼, 막상 불편한 답변이 돌아오면 해결책을 내놓고 싶은 충동이 생긴다.

팀원: 솔직히 퇴사 고민 중이에요.
: 음… 다른 팀으로 이동해보는 건 어때? 내가 팀장님한테 말해볼까?

“제대로 위로하기”란 책의 저자들은 이것도 전환반응의 일종이라고 말한다. 상대의 감정이 불편해서, 문제를 해결하거나 설명하려고 시도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고 설명한다.

저자들은 아래와 같은 방식으로 충동을 억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 상대의 기분을 안다는 인상 주기
  • 문제의 원인 밝혀내기
  • 대처 방법 설명하기
  • 걱정거리 축소하기
  • 긍정성 강요하기
  • 강인함 칭찬하기

들어주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상대의 고민을 들어준다 해도 해결책까지 제시할 필요는 없다.

대부분의 경우 사람들이 기대하는 건 해결책이 아니다. 그들은 단지 자신의 말을 들어줄 사람이 필요할 뿐이다.

팀원: 솔직히 퇴사 고민 중이에요.
: 그렇구나… 언제부터 그런 생각이 들었어?

조언의 내용과 의도가 아무리 좋아도,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저항하면서 내심 반감을 품는다고 한다. “내가 너였으면 이렇게 했을 거야”라는 말은 결국 “넌 이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어”라는 메시지가 된다.

하지만 먼저 질문하고 경청하다 보면, 상대가 먼저 조언을 요청할 때가 있다. 그때 건네는 경험담은 진정으로 도움이 된다.

조언을 하고 싶다면

핵심은 간단하다. 조언하지 않고 질문만 던지는 것이다.

책에서는 퀘이커교의 “해명위원회”를 소개한다. 고민이 있는 사람을 위해 모이는 자리다. 규칙은 명확하다. 조언하지 않는다. 비슷한 경험을 언급하지 않는다. 오직 질문만 던진다.

교육자 파커 파머가 교장 자리 제안을 고민할 때 이 모임에 참석했다.

“교장이 되면 뭐가 좋아질까요?” 위원들은 같은 질문을 집요하게 반복했다.

파머는 단점만 늘어놓았다. 한참 뒤에야 입을 열었다.

“아마도… 신문에 ‘교장’이라고 쓰인 제 사진이 실리는 것 아닐까요.”

자신이 원한 건 교장이 아니라 인정받고 싶은 욕구였다는 걸 깨달은 순간이었다.

만약 누군가 “당신은 그 일에 별 관심 없어 보입니다”라고 직접 말했다면?

파머는 방어적으로 반응했을 것이다.

질문은 상대가 스스로 답을 찾게 한다. 조언은 방어를 만든다.

나의 경험

나는 조언을 줄 때 조금 다른 방법을 써본 경험이 있다.

같은 회사에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싶어하는 주니어가 있었다. 새로운 기술 스택, 코드 리뷰, 애자일. 첫 회사라 뭐든 해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

직접 말해주고 싶었다. 현실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고. 하지만 그 말이 닿지 않을 것 같았다. “아직 넌 몰라”, “생각만큼 쉽지 않아” 같은 조언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마침 “함께 자라기”라는 책으로 스터디를 기획하고 있었다. 애자일과 협업, 조직 내 변화에 대한 책이다. 이 주니어를 초대했다. “객관성의 주관성”이라는 챕터를 함께 읽었다.

“마음에 안 들면 어떤 ‘객관적’ 자료를 갖다 줘도 설득할 수 없습니다. 내가 설득하고 싶은 상대를 자주 만나서 신뢰를 쌓고, 그 사람이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이해해야 합니다. 출발은 자료가 아니라 사람입니다.”

이 내용이 닿기를 바랐다.

몇 주 뒤 회고 시간, 그 주니어가 말했다.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와 근거가 있어도 신뢰가 없으면 소용없다는 걸 깨달았다고.

만약 내가 직접 말했다면 어땠을까. 아마 방어적으로 반응하고 반감을 품지는 않았을까?

다만 이 방법은 시간이 오래 걸렸다. 지지반응을 알았더라면, “이 기술을 도입했을 때 팀원들이 가장 걱정할 부분은 뭐라고 생각해?” 같은 질문을 먼저 던져보지 않았을까?

마치며

시니어가 된다는 건 더 많이 말해야 한다는 게 아니다. 더 잘 들어야 한다,

  1. 전환반응 대신 지지반응을.
  2. 조언 대신 질문을.
  3. 해결책 대신 경청을.

다음에 팀원이 힘들다고 할 때, 이 질문들을 떠올려보자.

  • “어떤 부분이 제일 힘들어?”
  • “언제부터 그런 생각이 들었어?”
  • “어떻게 되면 좋겠어?”

조언 열 개보다 질문 하나가 나을 수 있다.

Grow & Glow © 2026

Banner images by undraw.co